장기 저금리가 낳은 생산성 저하와 좀비기업의 그늘 [일본 초엔저 현상 ②]

 아마도 지금처럼 "일본 여행 가기 딱 좋은 시기"라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들었던 때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일본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하죠. 하지만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관광 호황의 이면에는 일본 서민들의 깊은 한숨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번 2편에서는 엔저가 일본 내수 경제에 미친 명암을 살펴보고, 특히 일본 경제의 고질병으로 떠오른 '좀비기업(Zombie Firm)' 현상이 청년들과 국가 전반에 어떤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1. 엔저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 극명한 명암

엔저 현상은 일본 경제의 모습을 완전히 두 갈래로 쪼개 놓았습니다. 대기업과 관광업은 웃고 있지만, 골목상권과 일반 가계는 앓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수혜 분야(빛)는 수출 대기업, 관광산업 및 숙박·유통업입니다. 달러로 환산되는 이익이 증가하고, 외국인 여행객 폭증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타격 분야(그늘)는 수입 원자재에 의존 중소기업, 일반 가계입니다. 소비자 물가는 급등하고, 실질 임금 저하로 가계 부담이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수출기업과 관광산업의 호황

도요타 같은 대형 수출기업들은 환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같은 양의 물건을 팔아도 엔화로 환산한 장부상 이익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관광산업 역시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일본 물가가 너무 싸다"며 여행객이 몰려들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일본 관광 호황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작 현지 주민들은 물가 상승과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소비자물가 급등과 가계 부담

진짜 문제는 일반 서민들의 삶입니다. 돈 가치가 떨어지니 수입해 오는 식료품, 생필품, 에너지 가격이 줄줄이 올랐습니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마트 장바구니 물가는 치솟으니 가계 부담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엔저는 일본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수출 대기업 배를 불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좀비기업(Zombie Firm)이 늘어난 이유와 치명적인 영향

여기서 우리는 일본 경제의 더 깊은 속살인 '좀비기업'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진정한 회복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좀비기업의 정의와 일본 사례

좀비기업이란 버는 돈(영업이익)으로는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해, 정부의 지원금이나 은행의 만기 연장으로 간간이 연명하는 한계기업을 뜻합니다. 영화 속 좀비처럼 죽지도 살지도 않은 채 껍데기만 남아있는 회사들입니다.

일본의 장기 저금리 정책은 바로 이 좀비기업을 양산한 일등 공신입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초저금리 대출을 지속해 주다 보니, 시장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이 퇴출당하지 않고 시장에 계속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경쟁력도 갖추지 못하고 새로운 투자 여력도 없는 기업인데, 은행은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대출 연장이나 추가 대출(연명 대출)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베노믹스가 초기에는 엔저 효과와 주가 상승으로 기업 실적이 개선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성이 높은 기업보다 경쟁력이 낮은 기업도 낮은 금리 덕분에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좀비기업을 양산하게 되었습니다.

왜 문제인가: 생산성 저하와 청년 고용 영향

"그래도 회사가 망하지 않고 유지되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가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 노동생산성 저하: 효율성이 낮은 기업들이 자본과 인력을 붙잡고 있다 보니, 일본의 노동생산성이 선진국(OECD) 평균보다 눈에 띄게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혁신적인 신생 기업이 자라날 토양이 사라진 것입니다.
  • 혁신 지연: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려면 인재, 자금, 투자가 미래 산업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기존 기업들이 시장을 계속 차지하고 있으면 신생기업의 성장 공간이 줄어듭니다. 이 때문에 디지털 산업과 IT 분야에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입니다.
  • 청년 고용 영향: 좀비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과감한 설비 투자나 기술 개발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당연히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는 청년층의 소득 저하와 고용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일본의 노동생산성이 낮아진 원인

일본은 세계 4위권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높은 중소기업 비중은 지역경제를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디지털 전환, 자동화 투자 등에는 반응이 늦습니다. 코로나19 당시 일본의 행정 디지털 전환 문제가 세계에 화두를 던진 것처럼 행정의 디지털화, 서비스업의 생산성, 인공지능 활용 등에서는 속도가 많이 늦습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동화와 디지털 혁신을 서둘러야 하는데도, 산업별로 전환 속도에는 큰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3. 관광 호황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

초엔저 덕분에 일본은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대표적인 여행지가 됐습니다. 관광산업은 분명 일본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지만 그 이면도 존재합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관광 소비 증가로 지방경제가 활성화되고, 서비스업 고용이 확대되고, 외화 유입 증가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버투어리즘 심화로 지역 주민의 생활 불편, 숙박비 급등, 관광 의존도 확대, 서비스업 인력난 등이 발생했습니다.
이렇게 관광산업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편적이고 일시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금융완화 정책의 장기화는 산업 구조조정보다는 오히려 기존 구조가 유지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는 '초저금리 → 연명 대출 → 좀비기업 증가 → 생산성 저하 → 성장 둔화'라는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일본 경제를 약화시키는 구조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 둔화 인포그래픽
초엔저가 일본 경제를 완전히 살리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엔저는 분명 수출기업과 관광산업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환율 때문이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가 원인입니다. 즉, 장기 저금리, 고령화, 생산성 둔화, 디지털 전환 지연, 좀비기업 증가 등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초엔저와 관광 호황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현재 일본의 초엔저는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경제 구조의 결과입니다. 특히 30년 이상 지속된 저금리 정책은 경기 급락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경쟁력을 잃은 기업까지 시장에 남게 하면서 생산성 저하와 혁신 둔화라는 부작용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경제는 여전히 세계적인 제조업 경쟁력과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구조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3편에서는 이러한 초엔저와 일본의 구조적 변화가 한국 경제와 기업, 수출산업, 관광산업, 투자자에게 어떤 기회와 위협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앞으로 엔·달러 환율 전망과 한국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점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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